조용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숲과 바다, 오래된 집과 붉은 그네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독일 출신 그림 작가 브리타 테켄트럽.
그녀의 작품은 화려하게 소리치기보다, 낮고 깊은 울림으로 마음을 두드립니다. 콜라주와 판화 기법을 활용해 만들어낸 화면은 빛과 그림자, 계절의 결, 생명의 숨결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오늘은 브리타 테켄트럽의 대표 그림책 7권을 통해, 자연과 삶, 기억과 위로를 건네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천천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1. 『고래의 노래』
(글: 니콜라 데이비스 / 출판: 북극곰)
브리타 테켄트럽과 니콜라 데이비스가 함께한 『고래의 노래』는 혹등고래의 신비로운 노랫소리를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과 생명의 소통을 아름답게 그려낸 감성 그림책

“깊고 깊은 푸른 바닷속에서 혹등고래 한 마리가 노래합니다.”
이 책은 바다의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를 따라가는 여행입니다.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작가인 니콜라 데이비스와 브리타 테켄트럽의 만남은, 그 자체로 경이롭습니다.

고래의 노래는 알록달록한 구슬 목걸이에 비유됩니다. 낮고 웅장한 음에서 시작해, 별빛처럼 반짝이는 높은 음으로 이어지는 소리의 흐름. 테켄트럽은 이를 빛방울과 색의 리듬으로 표현합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거대한 고래가 푸른 심해를 가로지르며 유영하고, 우리는 그 곁에서 숨을 고르게 됩니다.

고래는 왜 노래할까요?
우리는 아직 그 의미를 모두 알지 못합니다. 다만, 서로 다른 무리가 노래를 배우고, 새로운 가락을 더하며, 소리로 소통한다는 사실만을 어렴풋이 이해할 뿐입니다.
이 책은 묻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비밀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모르는 세계 앞에서 겸손해지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2. 『조그만 새싹』
(출판: 주니어RHK)
브리타 테켄트럽 특유의 섬세한 콜라주 기법으로 생명의 성장과 계절의 순환,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용기의 메시지를 담아낸 자연 그림책

봄이 오고, 씨앗들이 앞다투어 싹을 틔웁니다.
그러나 한 조그만 씨앗은 조금 늦게 고개를 내밉니다.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자리. 이미 훌쩍 자라난 식물들에 가려진 작은 존재. 하지만 새싹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햇빛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책은 생명의 순환을 담담히 보여 줍니다.
봄에서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봄으로.

테켄트럽 특유의 콜라주와 판화 기법은 흙의 질감, 방사형으로 퍼지는 햇빛, 바람에 날리는 씨앗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담아냅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자연은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응원을 건넵니다.
우리 모두 한때는, 햇빛을 찾아 헤매던 작은 새싹이었으니까요.
3. 『서로를 지키는 가족』
(글: 퍼트리샤 헤가티 / 출판: 봄봄출판사)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보호와 돌봄의 의미를 전하며, 가족의 사랑과 연대의 가치를 따뜻하게 보여 주는 그림책

“모든 생명은 서로를 돌봐요.”
이 문장 하나가 책 전체를 설명합니다.
땅 위에서, 하늘에서, 바닷속에서, 얼음 위에서 동물들은 서로를 지키며 살아갑니다.

해가 떠오르는 장면은 컷팅 기법으로 표현되어 빛이 실제로 화면 밖으로 번져 나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보호와 사랑이라는 주제를, 테켄트럽은 따뜻한 색감과 안정적인 구도로 담아냅니다.

이 책은 가족을 혈연의 개념에만 가두지 않습니다.
‘곁에 있어 주는 존재’가 곧 가족임을 말합니다.
4. 『운하 옆 오래된 집』
(글: 토머스 하딩 / 출판: 북뱅크)
안네 프랑크 하우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역사와 기억, 평화의 가치를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깊이 있게 조명한 역사 그림책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린센그라흐트 263번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방문되는 집 중 하나, 안네 프랑크 하우스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단지 한 소녀의 은신처를 다루지 않습니다.
400년 동안 역사의 소용돌이를 견뎌 온 ‘집’의 시선으로 유럽의 평화와 분쟁을 되짚습니다.
“집은 기억합니다.”


전쟁과 박해, 부정과 왜곡 속에서도 집은 그 자리에 남아 증인이 됩니다.
테켄트럽의 섬세한 화면은 나무 바닥의 결, 초록색 문, 뒤뜰의 밤나무까지 담아내며 공간을 살아 숨 쉬게 만듭니다.
이 책은 어린이 그림책이면서도, 역사와 기억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5. 『삶이 머무는 자리, 그네』
(출판: 길벗어린이)
한 장소에 머물렀던 다양한 인생의 순간을 통해 위로와 성장, 추억의 의미를 섬세하게 담아낸 감성 그림책

푸른 바닷가 언덕 위, 빨간 그네 하나.
“그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어요. 바다 바로 앞에서 사람들을 초대했어요.”
160페이지에 달하는 이 작품은 한 장소에 머물렀던 수많은 인생의 순간을 그립니다.
유년의 웃음, 사랑의 설렘, 이별의 눈물,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


그네는 모험의 자리이자, 혼자만의 자리입니다.
지친 하루 끝, 잠시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는 공간.


테켄트럽은 빛과 바다의 윤슬, 상상의 장면을 겹겹이 포개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뭅니다.
“당신의 그네는 어디에 있나요?”
이 질문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습니다.
6. 『하나도 안 무서워!』
(출판: 주니어RHK)
작은 고슴도치의 하루를 통해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우리를 지켜 주는 힘임을 알려 주는 베드타임 그림책

작은 고슴도치는 무서운 것이 많습니다.
어두운 숲, 지하실, 낯선 소리.
하지만 큰 고슴도치는 다그치지 않습니다.
“너도 나처럼 무서웠니?”

두려움은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는 감정임을 이 책은 보여 줍니다.
천적 여우를 만났을 때,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마주했을 때, 두려움 덕분에 고슴도치는 살아남습니다.

베드타임 스토리로도 손색없는 이 작품은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무서워도 괜찮아.
그 감정은 너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야.”
7. 『집』
(글: 퍼트리샤 헤가티 / 출판: 봄봄출판사)
다양한 동물들의 보금자리를 통해 ‘돌아갈 곳’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연과 생명의 연결성을 보여 주는 아름다운 생태 그림책

겨울잠에서 깨어난 아기 곰은 세상을 탐험합니다.
비버의 집, 새의 둥지, 땅속 미로 같은 굴.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에게는 ‘집’이 필요해요.”

뚫린 페이지 구조는 숲의 공간감을 확장시키며, 독자가 숲을 직접 들여다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책은 단순한 생태 그림책이 아닙니다.
‘집’이란 결국,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임을 말합니다.
브리타 테켄트럽의 세계
브리타 테켄트럽의 그림책은 언제나 자연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생명, 시간, 역사, 기억, 성장, 두려움, 위로까지 모두 품고 있습니다.
그녀의 화면에는 빛이 있습니다.
해가 떠오르고, 바다가 반짝이고, 그네가 흔들리고, 숲이 숨을 쉽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빛 속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따뜻해집니다.
천천히 읽고, 오래 바라볼수록 깊어지는 그림책.
브리타 테켄트럽의 작품들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조용한 울림을 남깁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페이지에 머물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