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어떤 그림책은 조용히 다가와 오래 머뭅니다.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색과 문장이 마음에 남아, 다시 펼쳐보고 싶게 만들지요. 2026년, 세계적인 아동 도서 행사인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발표된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들은 그런 여운을 지닌 책들입니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단순히 ‘잘 만든 책’을 넘어, 그림책이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작품에 수여됩니다. 디자인, 서사, 실험성까지 모두 고려되는 이 상은 매년 전 세계 출판인과 작가들이 주목하는 지표이기도 하지요. 특히 올해는 한국 그림책의 존재감이 유독 선명하게 빛났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2026년 수상작 중 네 권을 골라, 그 안에 담긴 감각과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합니다.
우화와 옛이야기 부문 대상
『오누이 이야기』 – 이억배

익숙한 이야기가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누이 이야기』는 바로 그런 경험을 선사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른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짙은 청색이 화면을 지배하는 밤의 풍경. 그 속에서 등장하는 호랑이는 무섭기보다 어딘가 익살스럽고, 긴장 속에서도 웃음을 유발합니다. 전통 민화의 결을 지니면서도 만화적인 리듬을 갖춘 장면들은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끌어당깁니다.


이 책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거리두기’입니다. 이야기 속 세계를 ‘여기’, 독자가 있는 곳을 ‘거기’라 부르며, 독자를 끊임없이 이야기 안팎으로 이동시키지요.
“거기에서도, 가끔은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더라.”
이 한 문장은 이야기의 끝을 닫지 않고,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까지 확장합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공포보다 ‘재치’에 집중합니다. 위기 속에서도 꾀를 내고, 때로는 실수하는 오누이의 모습은 훨씬 인간적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오래된 설화이면서도, 지금 여기의 이야기처럼 살아 숨 쉽니다.
크로스미디어 스페셜 멘션
『상상 금지!』 – 이경국과 아이들

이 책은 한 사람의 작품이면서 동시에 수십 명의 작품입니다. 약 600명의 어린이 그림에서 출발해, 그중 일부가 하나의 이야기로 엮였습니다.

『상상 금지!』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상상’을 언제 시작했을까요?


책은 말합니다.
“상상은 생각을 마음으로 그리는 것”
심심함 속에서 시작된 생각은 점점 형태를 갖추고, 괴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친구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이는 그 낯선 존재들을 피하지 않고 바라봅니다.
그리고 결국 깨닫습니다.
“마음을 담아 생각하면, 나는 상상 친구들과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성’입니다. 서로 다른 선, 색, 형태가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는 상상이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책은 독자에게 말을 겁니다. 그림책이 끝난 뒤에도, ‘상상 친구’를 직접 그려보게 하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도록 유도하지요.
읽는 동안 우리는 알게 됩니다. 상상은 금지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켜줘야 할 세계라는 것을요.
오페라 프리마 스페셜 멘션
『마음 그릇』 – 전보라

이 책은 아주 조용하게 시작합니다.
“마음 그릇은 매일 배달됩니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내 마음에는 어떤 그릇이 도착했을까요?
『마음 그릇』은 감정을 ‘그릇’이라는 이미지로 풀어냅니다. 사람마다 다른 크기와 모양의 그릇을 받고,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하루가 달라집니다.

어떤 이는 바다를 담고, 어떤 이는 엉킨 실타래를 담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릇의 모양이 아니라, 그 안의 내용입니다.
이 책의 시각적 아름다움도 인상적입니다. 종이를 오려 붙인 꼴라주 기법은 감정의 층위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겹겹이 쌓인 색과 질감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의 결을 대신 전합니다.

그리고 책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당신의 마음도 괜찮다고.”
이 문장은 위로라기보다, 조용한 인정에 가깝습니다. 어떤 감정이든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지요.
어메이징 북쉘프
『꽃에 미친 김 군』 – 김동성

어떤 사람은 한 가지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합니다. 『꽃에 미친 김 군』의 주인공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실존 인물 김덕형을 모티브로 합니다. 그는 꽃을 관찰하고, 그리고, 사랑하는 데 평생을 바쳤던 인물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습니다.

“꽃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이들이 안타깝다.”
이 문장은 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책 속에서 김 군의 하루는 온통 꽃으로 가득합니다. 꽃에게 말을 걸고, 꽃을 읽고, 꽃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사랑을 온전히 담아낼 방법을 찾아냅니다.
조선 실학자 박제가는 그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김 군은 만물을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선언처럼 느껴집니다.
이 책은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이렇게까지 몰두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오래 남습니다.
그림책, 그 너머의 이야기
이번 수상작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확장’입니다.
『오누이 이야기』는 옛이야기를 현재로 확장하고,
『상상 금지!』는 개인의 상상을 집단의 이야기로 확장하며,
『마음 그릇』은 감정을 시각적 이미지로 확장합니다.
그리고 『꽃에 미친 김 군』은 한 사람의 집요한 사랑을 시대를 넘어 확장하지요.
그림책은 더 이상 어린이만의 책이 아닙니다. 짧은 문장과 이미지 안에, 오히려 더 깊은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이 네 권의 책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지금 당신의 이야기, 당신의 상상, 당신의 마음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리고 어쩌면,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림책을 펼치게 될지도 모릅니다.